세상이 오후 세시에 멈췄다.

일하는 시간이 지겨워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된 건 시간이 좀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시간이 지난 건 아니고 아마 시간이란 것이 제대로 일을 했다면 지난 시점이라는 것이다.

오늘따라 시간이 안 가더니, 회사 시계가 전부 고장이 났나 봐요.

그렇다고 휴대폰 시계까지 고장 났겠어? 뭔가 문제가 있나 봐.

휴대폰 시계뿐만이 아니다. 태양도 오후 3시 그대로였다. 세상이 이상함을 안 것은 의외로 운동 경기 중인 체육관들이었다. 축구 휘슬을 불어야 하는데, 선수들은 지친 것이 틀림없는데 오래도록 세시가 유지됐으니까. 선수들이 전부 탈진할 때까지 이어진 전반전에 사람들은 시간이 이상해졌음을 느꼈다. 야구가 9회가 될 때까지 해가 멀쩡히 떠있는 것도 이상했다.

세상이 오후 세시에 멈췄다. 해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계도 앞으로 가지 않았다. 시간이 전혀 지나지 않았지만, 배는 고파왔다. 화장실도 가고 싶었다. 노화는 계속 되는지는 모르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시간을 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고장 났으니까. 모래시계 안 모래마저 공중에 머물렀다. 계속…

어쨌든 혼란스럽겠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켜달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사람들은 하루에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퇴근하기 시작했다. 퇴근이 제법 빨라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맞다면. 월급도 성과제가 되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계속됐다. 문제는 월세였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고 있지 않으니 월세를 낼 수 없다는 의견과 월세가 없으면 생활이 안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아무튼 여러 가지 좋은 점과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대두되었다. 오후 세시가 계속되니까.

하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모든 문제점에서는 운이 좋게도 자유로웠다. 일하고 성과를 내면 월급이 나왔다. 예전보다 월급을 더 받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꽤 돈을 모을 때까지 얼굴에 주름이 늘진 않은 것 같았다. 노화되지 않던가, 내가 일을 잘해왔는데 보상을 덜 받았었던 것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오후 세시는 계속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료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했다. 오후 세시 특유의 조용함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멈춘 이후로 오후 세시를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는 시위하는 소리가 들렸고, TV를 항상 틀어놔야만 했다. 새로운 소식들이 매일매일 갱신되고 있었다. 세상의 소음이 너무 가득했다.

나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 오후 세시를 다시 즐기기 위해서다. 조용한 곳으로 떠날 수 있었다. 우습게도, 평생 여행이란 것을 간 적이 없었는데 오후 세시에 세상이 멈춘 이후로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해외에 갈 생각은 없고, 어디 조용한 시골에 갈 생각이었다.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고, 오후 세시에 세상이 멈춘 이후로 앞 기차와 간격을 두고 계속 운행하게 된 기차에 몸을 뉘었다.

나의 오후 세시를 즐기러 가기 위해서.